나의 이야기

고려왕조, 과연 북진정책 성공하였나?

점점The 2025. 5. 16. 18:15



고려왕조의 설립과 고구려 계승, 그리고 북진정책 이야기

혼란의 시대 속, 통일을 향한 새로운 길

■ 후삼국의 혼란에서 피어난 고려의 건국

10세기 한반도는 신라의 쇠퇴와 함께 지방 호족 세력이 할거하는 후삼국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이 혼란 속에서 궁예가 세운 후고구려와 견훤이 세운 후백제, 그리고 신라가 서로 대립하고 있었죠.

이때 왕건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궁예의 부하였으나 그의 폭정에 반기를 들고, 918년 새로운 나라 고려를 세웠습니다. 왕건은 해상 무역으로 부를 쌓은 호족 출신으로, 민심과 호족 세력을 아우르며 통일의 기틀을 다져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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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어떻게 나라를 안정시켰을까?

■ 호족 연합과 왕권 강화

고려 초기는 호족 연합 정치가 중심이었습니다. 왕건은 지방 세력과의 정략결혼, 관직 수여 등을 통해 그들의 협력을 이끌어냈습니다. 이후 광종 때에는 과거제를 도입해 신진 관료를 등용하며 왕권 중심의 정치체제로 전환합니다.

이런 흐름은 성종 때 본격적인 중앙집권 체제로 이어졌고, 유교적 국가 체제가 정착되며 고려는 안정된 국가로 자리 잡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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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정신을 잇다 – 고려의 정체성과 계승의식

■ '고려'라는 국호, 단순한 이름이 아니다

왕건은 스스로를 고구려의 후계자라고 여겼습니다. 국호 ‘고려’는 바로 ‘고구려’에서 따온 것이며, 그는 『훈요 10조』에서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라”**고 후대 왕들에게 명령하기도 했습니다.

고려는 고구려 유민과 문화를 수용하며 정체성을 세워갔고, 이를 통해 새로운 국가의 정통성을 확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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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으로, 북쪽으로! – 고려의 북진정책

■ 영토를 넓히고 고구려 땅을 회복하다

고려는 고구려의 옛 영토 회복을 국가 목표로 삼고 북진정책을 실행합니다. 태조는 압록강 일대까지 영토를 확장하였고, 993년 거란과의 협상을 통해 강동 6주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로써 고려는 국경 방어와 북방 개발을 동시에 추진하게 되었고, 고구려의 뿌리를 계승한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굳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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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거리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하려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만약 고려가 북진정책에 실패했다면, 한국사의 전개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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